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우리아 왕조 (문단 편집) == 개요 == 고대 [[인도]]의 [[제국]]. '''[[인도사]]에서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대제국'''으로, 인도 역사에서 [[무굴 제국]]과 함께 손꼽힐 만큼 거대한 땅을 가지고 있었다.[* 무굴 제국과 마우리아 왕조 중 누가 더 영토가 넓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무굴 제국의 전성기 영토는 약 4,000,000km^^2^^이지만, 마우리아 왕조는 워낙 옛날 국가였던 탓에 영토 면적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우리아 왕조의 전성기 면적은 학계에 따라 3,400,000km^^2^^에서 5,000,000km^^2^^까지 다양하게 갈린다.] 또한 영국령 [[인도 제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인도 아대륙]] 거의 전역을 통치했던 나라이다.'''[* 무굴 제국은 최대 판도를 이루었던 [[아우랑제브]] 시절에도 최남단의 [[마라타 동맹]] 등 힌두 소왕국들의 결사적인 투쟁으로 인도 통일에는 실패했다. 반면 마우리아 왕조는 아소카 대왕 시절 최남단의 소왕국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등 인도 대륙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마우리아 왕조는 기원전 322년 경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건국했다. 찬드라굽타는 이전까지 북인도의 패자였던 [[난다 제국]]을 무너뜨렸으며,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공으로 사분오열된 북인도 동부 지방까지 빠르게 집어삼키면서 세를 불렸다. [[셀레우코스 왕조]]로부터 인더스 강 동편의 영토를 인정받으며 북인도를 통일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남진 정책을 펼치며 인도 아대륙 상당수를 집어삼켰다. 마우리아 왕조는 제3대 왕인 [[아소카 대왕]] 시절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아소카 대왕은 재위 초기에 최남단을 제외하면 인도 대륙을 통일하였으며, 재위 중후반기에는 [[불교]]를 받아들여 문화, 예술을 장려하고 불교를 전파하는 데에 힘썼다. 당대 마우리아 왕조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제국'''[* 이 당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유럽과 중동은 [[디아도코이]]의 시대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었으며, 37년에 달하는 아소카 대왕 치세 내내 찬란한 고대 인도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마우리아 왕조 역시 아소카 대왕 사후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제국을 유지할 능력이 있던 5대 국왕인 삼프라티 마우리아가 50여년의 재위 끝에 사망하자 마우리아 왕조는 빠르게 무너졌다. 아소카 대왕이 정복한 [[사타바하나 왕조]] 등을 포함한 남부 지방들이 독립해 떨어져 나갔고, 무능하고 포악한 [[암군]]들이 연이어 즉위하며 마우리아 왕조는 갈수록 수렁에 빠져들었다. 기원전 180년대 즈음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쳐들어와 인더스 강 동편에 [[인도-그리스 왕국]]을 세우며 마우리아 왕조의 강역은 북인도 동부 일대로 축소되었다. 결국 기원전 184년에 최후의 왕인 브리하드라타 왕이 푸샤미트라 슝가 장군에게 살해당하면서 마우리아 왕조는 개국 139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마우리아 왕조가 멸망한 이후 인도 북동부에는 [[슝가 왕조]]가 들어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